서가를 거닐다 신간 서적 서가에 있었던'쇼핑의 철학' 이 벌써 정리되서 100번대 서가쪽으로 이동되었더군요.
근처에서 포즈필로 시리즈 책들을 몇권 더 발견했습니다.
뒤에 '철학'만 붙었지, 기본적으로 읽기 좋은 책입니다.
책 뒤에 찻잔 그림 하나씩 붙어 있고...
쇼핑의 철학 읽을때 '아 이거 차마시면서 읽으면 참 좋겠구나' 해서 동네의 찻집을 찾았습니다.
산책했을때 발견했는데 혼자 들어가기가 영 껄끄러워서 세달;? 동안 눈독만 들이다가...
하루종일 우울하고 기분나빴던걸 풀어보자! 란 핑계로 방문했습니다.
아마 평이한 기분이었으면 못갔을거예요 -_-; 처음 가보는 장소에 보통 사람이라면 긴장을 타게 되니까.
...가 아니라 '소심한 시민'족만 이러려나(....)
기분이 나빳고, 그런 '긴장타는' 느낌이라도 있으면 기분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 처음 가본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었습니다.
그게 이 책이었죠.
동네 아주머니들 사랑방으로 쓰일법한 카페에서 혼자 책읽기라.
후, 괜찮아요 -_-; 이어폰 덕에 아무소리도 못듣고 책에 집중할수 있었으니까.
차례도 참 심심할때마다 읽기 좋게 제목 잘 적혀 있네요.
구입해놓고 천천히 한 차례씩 읽으면 참 좋을것 같습니다.
뭐, 비가올때 한번씩 읽는책. 이렇게 라벨 달아가지고 말이예요.
제목'슬픈날들의 철학'처럼 우울함을 연상하기 좋은 감성들에 대한 에세이들이 적혀 있습니다.
위안을 받을수도 있고....
스스로 처한 상황에 대입시켜볼만한 생각덩어리들도 가득하네요.
차례들만 봐도 읽고 싶으신분들 한테는 입맛 당기는 책이 되어줄거예요.
이런 책은 선물하기도, 받기도 어렵죠. 스스로 구매해서 봐야하는책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좋겠네요.
인상깊게 읽은 구절이 무척 많습니다.
사람을 심리적으로 생각들의 역발상을 도와줍니다.
우울하다면 그 감정에 적극적으로 파고 들면 자연히 반대 감정으로 도약하게 될것이라든가...
암튼 사람의 마음에 톡톡히 위안을 주는 책입니다 ^_^
슬픔에 관해 파고들기보다 '슬픔에 이르는' 감정들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인상깊은 구절이 굉장히 많았고. 북다트 50개 다 찔러넣고도 부족해서 포스트잇까지 사용해 가면서 읽었습니다.
삶과 그 시험들 시험에 관하여시간에 관하여 -시험이라 하는것은 뭔가를 확인받기 위한 절차라는 것이 참 인상적.
시간에 관하여-시간은 덧없이 흩어지는것이 아니라 지속이며, 천천히 자신을 드러내는 새로움.
질병에 관하여
- 환자는 인내하는 사람. (아픈것을 인정함으로서 무모한 싸움에 의한 에너지 낭비를 줄일수 있다)
- 삶은 우리에게 초연함의 문제, 결국에는 삶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냐 침체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항상 재촉을 받고 있는 셈이다.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건강 그 자체일 수 있다.
부당함에 관하여
죽음에 관하여
- 죽음 이후에 무언가가 있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지 따지는 일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 된다. 뭔가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차원, 이를테면 너무도 엄청나서 우리 존재가 마냥 하찮게 여겨질 수 밖에 없는 차원이 펼쳐진다는게 문제이다.그렇기에 죽음에는, 서글프기보다는 진지한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울러 끔찍한 측면 또한 존재한다. 원래 삶이란 상상하는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로 그래서 진지하고도 끔찍하다.
- 부재하는 삶의 한계가 곧 우리 삶의 한계를 가르쳐주기에 그 추억은 이전 어느 때보다 더욱 생생하게 우리를 살아 있게 해준다.
절망에 관하여 - 불행에 직면에서는 두가지 유혹이 있게 마련이다. 첫번째는 불행 자체를 부정하고픈 유혹,두번째는 달리 언급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픈 유혹.
비극적인 것에 관하여 - 우리는 비극의 정점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비극이 희극의 정 반대라고만 생각해 왔다. 천만의 말씀이다. 비극이 곧 희극이다. 희극적인 것이 비극적인 것이다. 뭔가 좋지 않게 끝난다는 사실 자체에 비극성이 존재하는게 아니라 뭔가 좋지 않게 끝나야 만사 형통이라는 사실이 비극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악에 관하여
- 우리의 이런저런 정렬에 딴죽을 건다며 도덕을 성가시게 여기기보다는, 그걸 빌미로 타인을 비난 할 수 있어서 흡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자.
소외에 관하여 - 인간은 자신의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해 낯설어질 때, 자기 자신으로 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고통에 관하여 -흔히들 고통이 인간을 성장시켜 준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고통 속에 잠재하는 악을 깨닫는다면 고통 때문에 인간이 얼마나 자주 망가지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고통을 통해 인간을 발전시키려는 태도는 인간의 변천과정을 이해하는 가장 고리타분하고 전제적이며 앙심섞인 방법이다. 누구든 인간의 친구가 되고자 한다면 그런 식의 방법을 따르진 않을 것이다.
마음과 그 번뇌 영혼의 상태에 관하여
상심에 관하여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이 스러져 가기 마련이다. 삶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것이 현명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물이든 생물이든, 모든 것을 차지하고 간직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항상 불행한 상태이다.
여기서 에픽테토스의 사상이 빛을 발한다. 누가 내 지갑을 훔쳤소, 라든가 내 아내를 잃었소, 라고 말하지 말라 했던가. 그 대신 '나는 그것들을 우주에 되돌려 주었다오!' 라고 말하라- 하략
-살기 위해 불행속으로 뛰어듦으로써 생의 욕구는 진정한 삶을 드러나게 해준다. 따라서 이성 없는 삶이 없다면, 삶 없는 이성 또한 없는 것이다. 그걸배우기 위해서는 가끔 괴로운 상심도 필요하긴 하다.
화내는 것에 관하여
-세상을 향해 우리가 투덜대면서 우리가 세상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의 분노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분노 말고 다른 뿌리가 없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스스로를 망쳐가고 있을때, '나 정말 너에게 화났어' 라고 내뱉지 않을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때론 그렇게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분노가 통용되는 것이다. 그런 화조차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날엔 정말 걱정이 많아질것이다.
질투에 관하여 -살아있지 않는 자는 살아 숨쉬는 사람을 마치 자신에 대한 비난처럼 느낀다. 그로서는 닮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힘이 없다. 그럼으로써 느끼는 갈등은 결국 극심한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자기가 흠모하는 것에서 이런저런 단점들을 발견하고자 애쓰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울에 관하여 -누구나 슬픔으로 병에 걸릴 수 있다. 슬픈 감정에 자신을 마냥 방치하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 그것은 순식간에 사람을 망가뜨리는 수용돌이가 된다.
처음엔 슬퍼지는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엔 슬프다보니 다시 슬퍼진다. 마지막으로 왜 슬퍼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슬퍼하는 지경에 이른다.
슬퍼할 이유마저 상실한채 슬퍼하고 있는 셈이다. 슬프다는것은 그런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인해 절망하고, 너무 절망해서 사는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참다운 자아로 우뚝 서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시넹게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향수에 관하여
-과거를 되살리기 위해 사는 사람은 진정으로 산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현재를 싫어하여, 그 소중한 시간을 이미 저만치 도망가버린 젊음이나 되새기느라 헛되이 소모해 버린다. 존재로 인생을 채우는 대신 비존재로 채운다. 자기 자신만을 돌아보기 위해 과거에 병적으로 사로잡히는 것에 불과한 이러한 향수병은 잘못된 것으로 지적받아야 마땅하다.
권태에 관하여
-인가은 무언가를 갈망한다는걸 느끼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후회에 관하여
-용서한다는것은 결코 잘못을 봐주는 놀이가 아니며 오히려 참다운 후회와 회한을 이끌어 내는 자세이다.
불안에 관하여
무관심에 관하여 -사랑하십시오. 아니면 미워하십시오. 다만 무관심하지는 마십시오.
-지나친 감정표현이 반드시 감성의 잣대는 아니다. 그런것은 진짜 감정의 우러남이기 보다 그 속의 잉여부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하나는 감성이 자유롭게 말하도록 놔두는 것임에 반해,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모든 것을 감성과 연관시키는 것일 뿐이다. 그러다보면 진짜 예민하기는 커녕 그런 척만 하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무성의 이고, 나아가 거짓이다.
지혜와 그 가능성
부조리에 관하여
- 고통이란 항상 잉여일 뿐이다. 존재하게 만드는 것을 포함해 오로지 실존 자체만이 의미가 있다.
-모든 인간적 현실은 존재를 그 자체로 세우고자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정열이다. 하지만 정열은 허망한 것이다. 인간은 무용한 정열이다.
책임에 관하여
- 단순히 자기 행동의 원인을 의미한다거나 처신의 신중함, 혹은 성숙함 따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부름에 대해 같은 부름으로써 응답함을 일컫는 용어이다.
존재이유에 관하여
- 장미에겐 이유가 없다네.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꽃을 피울 뿐이지. 자기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자기를 봐주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네
- 그 이유는 자체 안에서 존재 이유를 찾는다. 그렇지 못하면 모든 게 허물어진다. 어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지혜에 관하여
- 진정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결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원래 지혜란 그것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태도와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 무분별한 광기에 들뜨지 않는것이 지혜로운 거라면, 자만에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지혜로운 자세이다. 그렇게 때문에 가끔은 지혜조차 뒤흔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로 지혜가 오만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낙천주의에 관하여
- 사람은 더이상 해야할 일이 한다ㅗ 없을 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모든게 끝나면 모든게 허용된다
- 삶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풍요로운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그냥 쓰러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리하여 수직과 수평의 두 차원으로 삶을 영위하는 그 누구한테도 두 가지 기회는 있는법이다. 그렇기에 수평적 차원에서 모든 것이 고갈된 것 같은 때라도, 종종 우리가 모르고 있던 가능성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실현한 발전상이 그 증거이다. 어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일이 오늘은 가능해진다. 이는 우리네 신념뿐만 아니라 미처 들춰내지 못한 가능성의 지혜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명철함에 관하여
행동에 관하여
-지혜는 비위나 살살 맞추는 것에 단호히 대처하면서 자기 자신 안에 단단히 버텨 그런 유혹을 이겨내는 태도에 길들어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성을 아끼고 그것에 기여하는 것은 그와 같은 강인하고 단단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받아들임에 관하여
초월에 관하여
-항상 똑같은 상태에 머물고 ㅅ피어하는 것이야말로 지독한 모순이다. 그런 경우, 우리는 과감히 변화함으로써 모순을 뛰어넘는다.
저항에 관하여
-자신의 잘못, 혹은 잘못했다고 믿고 있는 행위를 과감히 고백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 중 하나이다. 우리는 그런식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놓아버리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는 경우가 잦을수록, 우리는 그들 눈에 무가치하게 비쳐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 한다.
인간과 그 자산
내면의 삶에 관하여
-사랑받고자 하는 유혹은 생각보다 그 뿌리가 깊다. 때문에 신들의 동의만을 좇을 수 없을 경우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고자 애를 쓴다. 그렇게 해서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다. 사회와 타인들, 이 세상이 신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바로 그것들이 신의 섭리, 숙명 역할을 해주는것이다.
내면의 인간에 관하여
- 자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세상을 살아 있게 만들어준다. 내면의 삶에 대해 무지한 생각처럼, 자기 안에 파묻혀 세계오 단절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 내면의 삶으로 인해 엄청난 규모로 증폭된다. 모든 것이 너무도 강렬해져서 우리는 내면에서부터 삶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팡가하고 만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뉘앙스를 두르고 스스로를 펼쳐보인다. 자기 안의 풍부한 감각을 살아나게 함으로써 우리는 지각되는 세계의 진수를 나타낸다. 자아에세 세계까지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그렇게 자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용기에 관하여
- 용기 있는것이 죽음과 대면하는 데 있다면 그로부터 일련의 결론을 도출해 내야 할 것이다. 폭탄을 몸에 품고 자폭하는 테러리스트들 역시 익사 직전의 아이를 구하고자 물에 뛰어드는 사람만큼이나 용감하다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도 죽음과 관련한 대담성으로 인해 무고한 자를 지켜주려 애쓰는 자와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해야겠다.
과연, 죽음과 대면한다는 것만으로 용기를 논할 충분한 근거가 마련되는 것일까?
마음에 관하여
- 우리가 악의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은 선의를 통해서이지,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다. 악은 오류가 아니라 결핍인 것이다.
의지에 관하여
-의지른 우선 자발성을 통해 기능한다. 단지 변덕의 경우만큼은 예외로 두고 말이다. 자발적이며 무엇보다 진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지는 살고자 하는데 뜻을 둔 삶의 표출이다. 펄펄 날아 숨쉬는 행위이자, 견실함과 성실함이 담긴 행동이다.
끈기에 관하여
-처음에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그러나 계속해서 사랑하는건 또 다른 문제다. 그것은 단순히 불붙는 것이 아닌 불꽃을 계속 살아있게 하기를 요구한다. 그를 위해선 일종의 변화가 따라주어야 한다.
- 사랑은 단지 발견의 대상만은 아니다. 그것은 발명의 대상이기도 하다.
- 반복은 창조와 위대함의 열쇠이다. 그렇기에 반복은 시간과 삶의 본질에 대해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반복ㅇ르 통해 살기 시작한다면 그건 곧 살아 있는 것이 스스로를 반복할수록 더욱더 적극적으로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상상에 관하여
- 누군가 불행하다는 것은 자신의 문제들에 갖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에게는 그 문제들을 넘어서서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시간과 공간을 통해 보편적으로 슬그머니 전이 시키는 법을 배움으로써 그 굴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투사)
신념에 관하여
영혼의 평정에 관하여
위엄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