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주제는 '안락사' 입니다.
안락사. 최근 뉴스검색을 해보니 예전에 자신의 부모님에게서 산소호흡기를 떼낸 자녀들이 살인방조죄로 징역까지 살았던데 반해, 최근에는 안락사(존엄사)에 대해 좀 더 완화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듯 하네요.
'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 는 04 문광부 추천을 받은 도서입니다.
뱅상 왕베르란 프랑스의 젊은이가 20살 에 교통사고를 당해 요양원에서 지리하게 생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존엄한 죽음을 인정해 달라고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에게 편지를 날렸고,
그로 인해 프랑스 사회를 '안락사 논쟁' 에 빠지게 만든 책이죠.
책날개에 의하면 의료진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해서 자신에게 신경안정제를 주입해 달라고 요청했고,
원했던 바 대로 존엄하게 생을 마감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은 뱅상 왕베르 본인이 썼습니다.
교통사고(트럭에 받치는)를 당한뒤 9개월 동안 식물인간상태로 살아가며 손가락 하나밖에 움직일수 없었고, 그것을 통해 abcd~를 불러주는 어머니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다 책까지 쓰게 된거죠.
살아가는 모든것이 고통스러웠던 그는 자신의 존엄사를 허용해 달라고 의사에게 말하지만 거절당하고
간호사에게 말해봐도 거절당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편지를 쓸 생각을 하죠.
허나 대통령에게 쓴 편지는 비서실에 전달되고..
분노한 그는 어머니에게 기자를 만나달라고 합니다.
기자를 만난 덕에 뱅상과 그 어머니는 안락사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만, 정작 자신은 그런것을 귀찮게만 여깁니다. 왜
죽고 싶으니까 =_=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20대 초반, 죽을만큼 사랑했던 연인이 떠나가는걸 바라보아야 했고, 간지러운곳 하나 긁지 못해서, 사타구니 털이 꼬인것 까지도 주변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자율성을 상실한 삶. 성인이 되어도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이야기 해야 하는 남자의 삶. 성욕은 그대로지만 해결할 방도를 찾을수 없는 전신이 마비된 삶을 더이상 유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_=.
제가 알고 있는 존엄한 죽음을 허용하고 있는 곳은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란 병원입니다. 호스피스에서 한단계 발전한 병원인데,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 병원으로 유명하죠.
돈 있는 사람들은 거기로 가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고 하니, '존엄한 죽음'에도 자본주의의 논리가 개입하는가봐요 (-_-)
아무튼 안락사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뱅상은 그 덕에 죄인 사면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죽을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하나, 대통령은 6개월만 더 살아보고 결정하겠다는 이야기로 뱅상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
지금도 지긋지긋한데 6개월이나 더 자율성을 상실한채 이렇게 살아가라고? 하면서 말이죠.
뱅상은 결국 어머니를 통해 신경안정제를 주입받고 세상에서의 삶을 끝냈습니다.
허나 어머니는 법을 어긴 죄로 구속당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의사는 어머니 편을 들었습니다.
신경안정제로 사망한게 아니라 가사상태로 세상에 아직 머물렀었고, 소생을 위한 시술을 하려 할때 뱅상이 산소마스크를 억지로 벗으면서까지 죽음을 원했었다고.
책 날개에 적힌건 그게 다... 입니다. 과연 어떻게 됐을런지 이 책 이후- 에 대해서도 알고 싶네요.
지적자살은 학창시절 도서관을 거닐다가 발견한 책입니다.
학창시절 발견했던 최초의 '존엄사'에 관한 책이죠.
이 책 역시 안락사를 원했던 사람이 직접 쓴 책입니다.
뱅상의 경우는 사고를 통해 존엄사를 간절히 원했다만,
조 로만은 더이상 처치 불가능한 암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안락사를 원했습니다.
65세였던가? 유방암의 잦은 재발로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생각을 의사에게 밝히고 죽음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하다 결국 스스로 약을 먹고 생을 마감했죠.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꽤 옛날이었으니, 지식인계층이었던 조 로만이 약을 구하는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거예요.
읽은지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존엄사가 허용되지 않았을때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는데, 존엄한 죽음을 결심하고 나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말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자, 현대로 돌아와 봅시다 =ㅅ=.
미국에는 DNR처치라는게 있습니다.
환자가 의료진의 처치를 거부할 권리죠. 소극적으로나마 존엄사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좋게 말하면 이렇다만, 무지막지한 치료비로 가족의 부담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고 DNR에 서명하는 경우도 왕왕 있을것 같다)
우리나라서도 서서히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가 이슈화 되는듯 합니다.
한달 전엔가? 봤던 PD수첩에 암으로 더이상 처치 불가능하게 되신 아주머니 한분의 일상을 담았는데, 병원엔서 퇴원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 참으로 '거룩해' 보였습니다.
최근 도서관엔서 본 잡지(제 3국을 돕자, 라는 취지로 발행되는 정기 간행물) 에서 이런 문구를 봤습니다.
wellbeing? welldying?
잘 살 권리가 있다면 잘 죽을 권리 또한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죠. 옳은 말입니다.
스스로의 생을 결정할 수 있는 '의식' 이 있는 환자에게는 삶을 스스로 결정할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합니다.
PD수첩을 보니, 중환자실 담당의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중환자실 환자들의 삶을 유지시키기 위한 장치들은 '의식이 있는 환자' 라면 참고 견디기조차 힘든 처치들' 이라고.
환자에게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까지 살아 있으라고 하는게 과연 인도적인 것일까요?
병을 고치기 위한 고통을 감수하는것도 싫은데, 회복될 가능성조차 없는데 고통을 견디게 하는게 어디가 인도적인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_=
여튼, 의식 불명의 환자들의 안락사 논쟁은 아직 이슈화 될 주제는 아닌것 같고...
최소한 스스로의 생을 결정할수 있는 '의식'이 남아있는 환자들에게는 삶을 스스로 결정할수 있는 권리를 주는것이 옳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존엄사 관련으로 이슈가 된 책은 없군요
음...
자신이 말기의 불치병이라는걸 알게 된 사람들이 호스피스로 가서 죽음을 기다리는면 고통을 조절하는 약물을 처방받을수 있는데...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환자들의 경우는 약물 처방 받는게 훨씬 힘든 절차를 거칩니다
(항정약품이라는게 다 그렇죠 뭐)
음... 이거 좀 어떻게 편하게 됐으면 좋겠네요...
안락사 논쟁에는 항상 이런 부제가 붙습니다.
사람의 죽음이란걸 허용해주면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이 엄청날 것이다!!! 하구요.
허나, 어떤 일이든 좋은점이 있으면 나쁜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두가지를 비교해보고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보다 크다고 판단되면 긍정적인 쪽을 선택하는게 옳은거 아니든가요?
해보지도 않고 수많은 부작용을 이유로 들어 정작 고통의 중심에 있는 '환자' 들의 삶을 좌지우지 할 권리가 대체 누구한테 있나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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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angii
2008/07/04 10:31
어떤경우에는 긍정적인 면이 크더라도 부작용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돼는 경우도 있죠. (쉬운 예로 미국소고기수입...)
하지만 안락사의 경우는 자신이 자신의 생명을 판단하는 것이기에 마땅히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참 목숨과 관련된 일은 무자르듯 하기가 너무 곤란하네요)-
혜란
2008/07/04 11:41
긍정적인 면이 아무리 크다 한들 '생명'이란 잣대가 들어가면 아무리 긍정적인 면이라 한들 힘을 잃지요.
그렇기에 안락사 논쟁에 있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_^
오래간만에 들러주셨네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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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y L. marr
2008/07/04 12:41
자기 자신이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라면
죽을 권리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타인이 죽는다는건 슬픈 일인것 같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라도요.
..아마도 제가, 죽는 그 사람을 지켜보는 또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걸까요.
읽고싶은책 하나 더 추가, 네요. 한rss에서 중요한 글로 체크된것중에 혜란님
블로그의 글의 비중이 점점 높아져갑니다, 감사드릴 일이네요:D-
혜란
2008/07/04 23:39
타인... 정확하게 '나에게 중요한 타자' 가 죽는건 굉장히 괴로운 경험이죠. 하지만 그런 소중한 타자가 세상을 뜨는것을 보고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나'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배워야할 자세라고 생각해요.
그 어떤 사람도 영원히 살 수 는 없으니까
나에게 소중한 그 사람도 언젠가 떠날것을 '받아들이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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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년
2008/07/05 21:24
안녕하세요, 혜란님 글 잘 읽고 갑니다.....정말로 간절히 죽고 싶다면, 죽을 수 있게 해주는 게 도리인 것 같아요. 몸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 그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마음이 무거운 얘기지만 정말로 적법한 절차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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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란
2008/07/06 20:01
사춘기 소년님께서 이 글을 읽으시고 간절히 죽고 싶은 분들의 마음에 대해 무겁지만 받아들이셨다니 정성들여 쓴 보람이 있네요 ;ㅅ; 마음이 무겁지만 그런 절차를 만들어스스로의 삶을 선택할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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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icky
2008/07/10 12:32
죽을 수 있는 권리라.. 하긴, 아무런 자율 행동권도 없이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연명하는 삶이 더이상 인간다운 삶으로 가치를 지닐수 있는지에 대해선 확실히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리고 그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해결책은 정말 죽음 딱 하나뿐이겠네요. 천주교 신자인 저는 어렸을때부터 주입받은 교육이 있어서 죽음의 선택에 대해선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오로지 '그래도 살아 있음으로 해서 가지게 되는 가능성, 희망' 같은 것들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러한 희망이 철저히 봉쇄된 상태에서의 연명이라면, 정말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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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란
2008/07/10 13:43
프랑스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보급하는 종교가 천주교죠. 저 또한 카톨릭 신자구요. 하지만 깊이 생각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주인공인 뱅상 왕베르는 회복을 기다리는 병원에서 생을 연명해 나갑니다. 말씀하신대로, '가능성과 희망'을 걸고요.
그러나 의사들의 처방에 더이상 회복의 여지가 없다고 하니, 자신의 생에 대해 다른방향으로 생각해본것일테고, 그 대안이 된것이 죽음을 선택하는것이었죠.
저자가 받은 편지중엔 그렇게 사지가 마비된 상태로 5년을 지내노라니 살아있다는것 한가지만으로도 희망을 가지게 되신 분도 있었다 합니다.
살아감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지만, 뱅상은 죽는것을 원했죠.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음.. 저는 저러한 일이 '내 문제' 가 되었을때 스스로 선택할수 있는 권리를 가질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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