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책 제목을 알게 된것은 역시 블로그 서핑을 통해서. 아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란 책을 알게 된 날, 다른 블로그에서 알게된 책이었습니다.
평소에 관심이 참 많았던 영역입니다 -_-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어떤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단지 동정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는것은 아닌가? 동정이 진화되서 복지학이란 학문이 된것인가... 뭐 이런 상념들이 겹치고 겹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배울수 있지 않을까, 하여 대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곳 도서관에는 이 책이 없었기에 구매를 해서 읽어야 하나, 했는데 동네 도서관에 이 책이 소장중이더군요 >ㅅ<; 얼른 반납해야 하는것이었고,
그래서 시력교정 수술하러 가기전에 필사적으로 읽어냈(....아니 뭐 필사적 까지는 아니고 -_-)던 책입니다^_^ 책 날개를 보면...
수전 손택이라는 분은 미국 대중문화계의 퍼스트레이디란 평을 얻고 계신 분이라고 합니다. 만. 누군지 잘 모르고 -_-
이름이 기냥 독특해서 기억하기 좋아 기억하고 있었던 분이었죠. 대중문화계에서는 알아주는 지적인 글을 쓰고 있긴 하나, 비평계 사람들은 그녀의 대중문화체적인 글을 무척 싫어하시는듯 합니다...
만, 저는 이렇게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분들을 매우 좋아합니다 -_-. 이해하기 쉬운만큼, 글을 쓰신분의 화법에 넘어가서 자신의 생각을 깊이 고려해보지 못하고 그 사람의 관점이 내 관점인것처럼 세상을 보게 되기 쉽다는 위험함이 있긴 한데...
그걸 고려하고 있다는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고, 그러게 되지 않도록 다독을 하고 있으니, 뭐 괜찮겠죠(....-방어기제 : 합리화 =>퍽)
'타인의 고통' 이 제목이 상징하는것은 '전쟁'입니다. 전쟁상황을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이 전쟁을 어떤식으로 느끼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떠한가, 에 대해 쓰고 있는 책이죠. 책의 말미에 궁국적으로 전하고 있는 메세지는
'전쟁은 나빠요. 하지맙시다'(....참 간결하게 줄였다) 입니다만, 전반적인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사진 찍는 사람들 나빠효' 라고 적혀 있네요. 전쟁사진을 남겨놓은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라든가, 그 사람의 약력등에 대해서 알게 되며, 그 사진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 세상에 남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걸 보고 있노라면...
전쟁사진을 찍는게 굳이 위대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실거예요.
뭐, 본문을 읽어보시고 어떤식으로 느끼셨는지 피드백을 받을수 있다면 좋겠는데^^;; 사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신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다가 소름이 쫙 -_-끼쳤던게 미켄란젤로의 피에타와 미나마타 마을의 병든 소녀를 씻기는 어머니의 사진을 비교해 놓았던 페이지.
좌,유진스미스, 우에무라 토모코와 그의 딸 우,미켄란젤로, 피에타 예를 들어 제시하고 있는 이미지는 이거 하나뿐인데, 수전 손택은 이런사진을 찍은게 작가의 의도였다고, 잔인해보이고 불쌍해 보이는 상황을 '세팅'까지 하면서 예술로 남겼다는것에 치를 떨었습니다. 저 또한 그걸 읽고 나니 온 몸이 쭈뼛! 했구요 -_-;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사진 하시는 분들은 꼭'ㅅ'//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들 입니다 ^_^(열어보세요)
유혈 낭자한 전투장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주장은 예쑬가들이 제작한 전쟁의 이미지에 늘 따라붙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카메라에 찍힌 이미지에 적용해 본다면 이런 생각은 도무지 그럴듯하지가 않다.
전쟁 사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무정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참화의풍경도 풍경은 풍경이다.
황폐함 속에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공격을 당한 뒤 몇달간 폐허로 남아 있던 세계무역센터의 사진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천박해 보이거나 죄받을 일을 저지른 듯 보일지도 모르겠다.
감히 그렇게 말하는 대담무쌍한 사람들은 대게 그 사진들이 '초현실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 병적인 완곡어법 뒤에는 아름대움에 대한 불명예스런 관념이 똬리 틀고 있다)
그런데도 그 사진들은 아름다웠다.
사진은 무엇이 됐든지간에 피사체를 변형시키는 경향이 있다. 예컨데 현실에서 존재할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어떤 이미지를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다.
예술 자체가 뭔가를 변형시키는 작업이긴 하다. 그렇지만 비참한 일들과 비난받아 마땅한 일들의 증인이 되어주는 사진은 '미학적'인 듯이 보이기만 하면, 간단히 말해서 지나치게 예술인 듯 하면 상당한 비판을 받는다.
사진작가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둘러싼 논의들은 사진이 지닌 이중적 힘 때문에 두드러질만큼 과장되어 왔다. =117 페이지.
매혹적인 육체가 외부의 공격을 받는 광경을 보여주는 모든 이미지들은 어느 정도 포르노그라피이다. 그렇지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담은 이미지들도 매력적일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자동차 충돌 현장 옆을 지나칠 때 운전자들이 차의 속도를 늦추는 이유가 단지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뭔가 소름끼칠 만큼 섬뜩한 것을 보고 싶어 하는것이다.
이런 바람을 병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 표현이 뭔가 보기 드문 일탈행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끔찍한 광경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 현상은 영원히 계속될 내적인 고문의 원천이라고 할 만 하다.
잔혹한 사진을 보고 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것을 알게 되고, 사진속에서 폭력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역시 그들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일이 없다는것을 느끼게 되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지루해지고, 냉소적이되며, 무감각해지게 된다.
냉담한것으로, 혹은 도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무감각한것으로 묘사된 상황으로 보면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분노/좌절등으로)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 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엊니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은 지구상에 함께 존재하고 있고, 그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것을 숙고해보는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젓는 고통스런 이미지는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사람들은 사색보다 기억 자체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듯 하다. 상기하기보다는 일종의 윤리적 행위이며, 그 안에 자체만의 윤리적 가치를 안고 있다. 기억은 이미 죽은 사람들과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가슴 시리고도 유일한 관계이다. 따라서 상기하기가 일종의 윤리적 행위라는 믿음은 우리도 곧 죽을것이라는 이치 안에 깊숙히 놓여 있다.
무정함과 망각은 함께 가기 마련인듯 하다. 그러나 역사는 좀 더 오랜 세월에 걸친 집단적 역사 안에서 상기하기가 차지하는 가치에 대해서 뭔가 다른 말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그저 불의가 너무 많을 따름이며, 아득한 옛날부터 내려온 비탄함을 너무 많이 상기하는 것은 사람 속을 훨씬 쓰리게 할 뿐이라는것을. 따라서 화해한다는것은 잊는다는 것이다. 즉 화해하려면 기억이 불완전하고 한정되어 있어야만 한다.